항암치료는 꼭 받아야 할까?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닥쳐오는 질문은 하나다.
“항암치료를 꼭 받아야 할까?”
항암치료는 암세포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치료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치료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한다.
치료를 결심한 이들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이 나른하며,
메스꺼움과 통증 속에서 삶의 의욕마저 잃는 고통을 겪는다.
반면, 치료를 포기한 이들은 암이 진행되면서 점차 삶의 질이 떨어지고, 예후가 나빠질 위험이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환자와 가족은 끝없는 고민을 거듭한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분명하다. 현대 의학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했고,
항암제도 세포 독성 위주의 전통적 방식에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 정밀한 치료법으로 다양화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초기 암이거나,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의 경우에는 항암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그러나 ‘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말기 암 환자나 고령의 환자,
혹은 체력이 약한 경우 항암치료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치료 자체가 고통스러워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며,
생존 기간에 비해 고통의 시간이 더 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말기 환자들은 항암치료 대신
통증 조절과 심리적 안정을 중심으로 한 ‘완화의료(palliative care)’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 선택은 삶의 마지막을 더 인간답게 보내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으로도 평가된다.
중요한 건,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항암치료는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치료 후 완쾌의 길로 나아가지만, 또 어떤 이는 치료가 삶의 고통만을 더할 뿐일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삶의 철학’과 ‘의학적 현실’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태도이다.
주치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치료의 목적, 기대할 수 있는 효과, 그리고 동반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단순한 의학적 선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방식, 가치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에 대한 깊은 고민이다. 그 어떤 결정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결정이 환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진심이라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 선택을 온전히 지지해준다면,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선택일 것이다.
70대 중기 췌장암,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까?
“암입니다.”
그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올해 일흔둘. 평소에도 소화가 잘 안 된다며 속을 자주 부여잡으셨고,
병원에 다녀오신 날은 유난히 말씀이 없으셨다. 결과는 췌장암 중기. 수술은 어렵고, 치료는 항암밖에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 중 하나다. 진단받는 순간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고, 예후도 나쁜 편이다.
특히 고령일 경우,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체중이 7kg 가까이 빠졌고, 체력도 예전만 못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족들 사이를 무겁게 했다.
의사는 항암치료가 완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암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했다.
평균 생존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고, 통증을 줄여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구토, 탈모, 극심한 피로, 식욕 저하 등 고통스러운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다.
어머니는 말없이 손을 꼭 잡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치료... 받아보실래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한번 해보자. 대신 너무 힘들면 멈추는 것도 생각하자.”
그날 이후, 우리는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노인 환자를 위한 저용량 항암요법을 추천했고,
통증 조절과 영양 관리도 함께 진행됐다. 치료가 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치료를 받은 지 4개월, 병세는 급속히 나빠지진 않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물론 치료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어떤 고령 환자에겐 항암이 독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환자의 체력, 의지, 삶의 질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의미 있게 사느냐이다.
항암치료는 삶을 연장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환자의 진심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