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생애 및 사제 수품
1955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프랑스 및 이탈리아계 아버지 루이 마리우스 프레보스트(Louis Marius Prevost)와 스페인계 어머니 밀드레드 마르티네스(Mildred Martinez)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요리에 능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그의 집에는 많은 사제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교리교사로 봉사한 아버지의 모범, 복사 활동, 본당 학교에서의 긍정적인 경험 등은 그가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주된 배경이 되었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 교구 사제와 수도회 사제 사이에서 고민하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과 수도회의 일치 및 친교 정신에 매료되어 아우구스티노회 소신학교에 입학, 1973년 중등 교육을 마쳤다. 1977년에는 빌라노바 대학교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 9월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1978년 9월 첫 서원을, 1981년 8월 종신 서원을 했다. 이듬해 시카고의 가톨릭신학연합 대학원대학교 (Catholic Theological Union)에서 신학 석사(Master of Divinity) 학위를 받았다.
1982년 6월 19일, 로마에서 당시 교황청 비그리스도교 사무국(現 종교 간 대화 평의회) 사무부총장이었던 장 자도(Jean Jadot)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로마의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안젤리쿰)에서 교회법을 전공하여 1984년 교회법 석사(Licentiate), 1987년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하며 라틴어와 독일어 독해가 가능하다.
페루 선교 및 아우구스티노회 활동
1985년, 미국 아우구스티노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페루 북서부 출루카나스(Chulucanas) 자치구의 아우구스티노회 선교단에 합류하여 1986년까지 사무처장으로 봉사했다. 잠시 미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마친 뒤 1988년 페루로 복귀하여 그때부터 10여 년간 정글, 산악 지대, 해안가를 넘나들며 사목 활동을 펼쳤다. 이 기간 트루히요(Trujillo)의 아우구스티노회 신학교를 이끌며 공동체 원장, 양성 책임자, 서원자 담당 교사 등을 역임했고, 교구 신학교에서 교회법을 가르치며 연구처장으로도 일했다. 또한, 트루히요 지역 교회 법원 판사 및 교구 참사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도시 외곽의 신자 공동체를 돌보았다. 페루에서의 깊은 경험은 그가 페루를 진심으로 아끼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훗날 페루 시민권 취득으로 이어졌다.
1998년, 아우구스티노회 시카고 관구(Midwest Augustinians)의 관구장으로 선출되어 1999년 3월 8일 미국으로 돌아와 직무를 시작했다.
2000년, 당시 관구장이었던 프레보스트는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공적 사목 활동이 정지된 제임스 레이(James Ray) 신부를 시카고 대교구의 요청에 따라 가톨릭 학교에서 반 블록 떨어진 시카고 성 요한 스톤 수도원에 거주하도록 허가했다. 그는 학교 행정부에 레이 신부의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노회 측은 레이 신부에게 감시자가 배정되었다고 밝혔으며, 레이 신부는 2002년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미성년자 학대 혐의 사제에 대한 더 엄격한 규정을 채택하자 다른 거주지로 옮겨졌다.[1]
2001년 아우구스티노회 총장으로 선출되어 6년 임기를 수행했고, 2007년 재선되어 2013년까지 총장직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시카고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의 양성 책임자이자 미국 중서부를 관할하는 '좋은 조언의 어머니 관구'의 제1참사 겸 관구 부관구장으로 봉사했다.
주교 및 추기경 시절

2014년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 교구의 교구장 서리 겸 수파르(Sufar) 명의주교로 임명되어 페루 북서부로 돌아왔다. 같은 해 12월 12일 치클라요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었다. 2015년 9월 26일에는 정식으로 치클라요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치클라요 교구는 페루의 주요 도시뿐 아니라 빈민가와 농촌 지역까지 아우르는 곳이었다. 2015년, 페루에서의 오랜 사목 활동과 공헌을 인정받아 페루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9년 7월 13일 교황청 성직자부(現 성직자성) 위원으로, 2020년 4월 15일에는 페루 카야오(Callao) 교구의 교구장 서리로도 임명되었다. 2020년 11월 21일에는 교황청 주교부(現 주교성)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페루 주교회의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에는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카리타스 페루의 지도부 일원이었다. 2021년 3월 1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개인 면담을 가져, 시카고나 로마에서의 새로운 임명에 대한 추측을 낳았다.
2023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레보스트 주교를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치클라요 명예 대주교-주교 칭호를 부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주교부 장관직을 제안받았을 때 그는 "저를 임명하시든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두시든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으라고 하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아우구스티노회 입회 시 서약한 순명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학생 시절 한 연로한 사제로부터 "젊을 때는 독신 생활이 더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순명 생활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순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수도회와 교회 안에서 요청받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부 장관직을 제안하며 프레보스트에게 "내가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엿다.
2023년 9월 30일 추기경회의에서 마르크 우엘레 추기경의 뒤를 이어 산타 모니카 델리 아고스티니아니 성당의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주교부 장관으로서 교황청 라틴 아메리카 위원회 위원장직도 겸임하게 되었는데, 페루에서의 오랜 경험 덕분에 이 역할에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주교부 장관으로서 그의 임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주교상, 즉 하느님, 동료 주교, 사제, 신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성직자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우선 과제였던 시노달리타스(synodality, 교회 공동 합의성)의 강력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2023년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교회가 "성령과 교회 안에 살아있는 진리 추구의 정신에 진정으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주교직 제안을 거절하는 사제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임무는 더욱 복잡해졌다. 2025년 2월 6일에는 주교급 추기경으로 승격되어 로마 관구의 알바노(Albano) 주교좌 명의를 받았다.
주교부 장관직은 전 세계 주교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추천하는 핵심적인 자리였기에, 그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크게 높아졌고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파파빌레)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교황에 선출되기 전에는 언론 인터뷰가 적어 교회 내 주요 쟁점에 대한 그의 견해가 폭넓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성직자 학대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비판에 직면했다.